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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에서 만나다
최건차 목사
2015-01-27 13:50:12   인쇄하기 [trackback]
한국교회신보
 

그 사람 김신조를 만나기로 했다. 대단한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던 사연들을 털어놓고 싶어서 지난 늦가을 만남을 주선한 이춘만 장로의 승용차에 올랐다. 한강을 건너 양수리가 가까워 질 때까지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있는데 이제 5분 내로 도착한다는 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경비가 서있는 정문을 정중하게 통과 한 후 비스듬한 길을 오를 때는 40년 전 박정희대통령을 알현하러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가 회상됐다. 그가 생포되어 기자 회견을 할 때 감히 “청와대를 까러 왔수다. 박정희 모가지 따러왔시오.”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캠퍼스의 본관 같은 곳에 들어서니 사진으로 눈에 익는 그 사람이 점퍼차림으로 기다리고 서있다. 나도 정장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남쪽 대표가 북쪽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쪽에서 정한 장소에 도착한 모양새로 반갑게 만나 먼저 기념사진을 찍었다. 곧 바로 응접실로 들어가 따끈하게 끓여낸 차를 마시면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배석인 이 장로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김 목사님을 한번쯤 꼭 만나 뵙고 회포를 풀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자 사람을 많이 대해 본 듯 여유로우면서도 겸손하게 “최 목사님이 저를 찾아주셔서 참으로 영광입니다”라고 했다.



담아두었던 추억과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모님이 전주 최 씨가 아니지요”라고 물었다. “예, 맞습니다. 전주 최 씨인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말에 사모님이 대단하셔서 그렇게 믿어졌다고 했다. 사실 전주 최 씨인 우리집안은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전통적으로 강한 것이 특징이라는 말을 해놓고 같이 웃었다. 그는 최정화와 결혼하고 낳은 첫딸을 남쪽에서 얻은 희망이라는 뜻으로 남희南希로 지었다고 했다. 지금 남희는 감리교 목사의 사모가 되었고 그 다음에 낳은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직장과 영주권을 얻었는데 며칠 전에 다녀갔다고 했다. 우리 집도 아들 하나가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시민권을 받고 루터교 목사로 있고 고명딸은 바이킹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장단을 맞추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1968년 1.21 사태로 전방의 군대생활이 무척 힘들어졌다. 부대에서는 체력이 좋은 병사 40명을 선발하여 내게 맡겼다. 낮과 밤 우천 시를 가리지 않고 사격과 총검술에 태권도를 연마하면서 산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시키라는 것이다. 한국군 최초의 5분대기전투소대장 직을 맡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병사들 입에서는 ‘그 개새끼 대문에 군대생활 개 피 쏟게 됐다’고 하는 말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는 북한군특수부대 소위였고, 나는 육군중위로 전방 부대의 작전장교였는데 부산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날을 잡고 청첩장을 돌린 상태였다.



부산에 갈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을 다져 먹고 강도 높은 훈련을 몸소 실시했다. 다행이 체력이 따라주고 적성에 맞아 기왕에 맡은 임무라 2등을 싫어하는 기질을 발휘하여 최상의 전투소대를 만들어 낼 작정을 했다. 부산에서는 예정대로 결혼식을 치르려고 육본과 1군사에까지 힘을 써 5분대기전투소대장을 계속한다는 조건부로 결혼휴가를 받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곧바로 신부를 데리고 전방으로 올라와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 읍내에서 살았다. 매일같이 철모에 완전군장을 하고 이산저산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부산에서만 자란 아내는 군인들의 생활을 잘 모르고 내가 장교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부대는 수시로 나오는 전투태세 점검에 지적을 받지 않아야 했고 부대장은 진급에 영향이 컸기 때문에 내게 관심이 많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사격, 총검술, 태권도, 완전군장산악 행군 등 5분대기전투소대의 종합전투준비평가와 완전군장 산악달리기 전술대회에서 우승을 해냈다. 부대장은 물론 전부대원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아내는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부대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석유호롱불을 켜야 했다. 높고 으슥한 부대의 뒷산에서는 밤마다 부엉이 울어댔는데 비나 눈이 내릴 때는 그 소리가 음산하게 들여 병사들의 심사를 휘젓곤 했다. 수은주가 영하 23도까지 내려가고 눈보라가 치던 밤이었다. 부엉이가 또 부∼엉 부∼엉하고 청승맞게 우는데 어딘 선가 한방의 총성이 울렸다. 즉시 출동하여 살펴본 결과 외진 물가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가 부엉이 울음소리에 환각을 일으켜 총구를 목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 시신 수습이 끝난 후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엉이소리가 들리지 않게 없애버리라는 부대장의 특명이 내게 부과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내에서 총검술과 태권도를 마치고 산악훈련을 나가려고 잠시 휴식중인데 누군가“소대장님, 때가 왔습니다. 이번에 전우의 원수를 꼭 갚아야합니다.”라고 했다. 어디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느냐고 물었더니 그놈의 부엉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멀리 까치와 참새들이 맴돌며 시끄럽게 지져대는 곳을 보니 시커먼 물채가 희미하게 날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부엉이가 산기슭을 날다가 까치와 참새 떼에게 휘둘려 잎이 없는 소나무가지에 앉아있는 것을 목격했다.



급한 김에 혼자서 칼빈M2 소총을 들고 담을 뛰어넘어 산기슭으로 내달았다. 사격권 안으로 접근하여 목표물에 총을 겨누려는데 아차! 부엉이가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린다. 주저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냥 세발을 연속으로 쏘았는데 부엉이가 떠오르는 것으로 보여 허탕인가 싶어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 “명중! 명중! 우리 소대장님이 부엉이를 잡았다”라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 머리를 들고 보니 소대원들이 산기슭으로 잔득 오르고 있었다. 부대장의 깍듯한 치하와 부대원들로부터 영웅대접을 받았지만 결혼 예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잃어버렸다. 산기슭을 급하게 오르다가 어떻게 흘렸는지 알 수가 없어 부엉이를 잡은 대가를 치루고 말았다.



이후 나는 월남전에 참전하고 전역한 후 부산에서 직장예비군 중대장이 되었다. 예비군 역시 김신조 때문에 생긴 것이어서 이번에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한 결과 예비군 창설7주년을 맞아 전국최우수 예비군중대장이 되었다.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고 금일봉과 대통령휘장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고 박대통령과 마주 앉아 오찬을 했다. 예비군에 관한 대화를 한 후 곧바로 KBS TV 반공좌담회에 참석하여 20분간 생방송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알려지면서 부산지역 반공연사로 활약한 후에 목사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 사람 김신조는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나에게도 영예를 안겨준 은인인 셈이다. 그가 1968년 5월부터 무려 2천여회 이상 반공강연을 했다는데도 나는 그의 강연을 들어보지 했고 만나보지도 못 했다. 세월이 좀 더 흘러 그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꼭 만나서 축하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다가 또 세월이 흘러 고희를 넘긴 후에야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양수리의 북한강 쪽에서 만나게 되었다. 내가 한 살 위라서 마치 남쪽의 형이 북쪽에서 내려온 아우를 그리다 만나는 것 같아 감개무량하고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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