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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 그 길을 존 칼빈에게 묻다
2장. 내가 누군데?-장호광교수
2014-10-15 09:11:09   인쇄하기 [trackback]
한국교회신보
 

2. 하나님의 DNA



자식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는다. 아버지의 기질과 체질과 정서가 유전된다. 그뿐 아니라 자식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도, 가치관도, 말하는 것도, 걸음걸이도 아버지를 닮아간다. 마찬가지로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당신의 형상을 물려 주셨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에게 유전된 하나님의 DNA를 잘 돌보고 키우면 우리는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귀며 살다 보면, 거울 앞에 선 우리가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듯,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달리 말해,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격(지, 정, 의)과 마음, 그리고 양심을 소유한다는 사실에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이성에서 찾을 수 있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죄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종교적 감수성에 있어서 자신의 양심을 자극시켜 잠시 동요되었지만, 곧 바로 섬광처럼 그 양심이 사라진 빌라도의 예에서 발견된다. 이뿐 아니라 인간의 죄임 됨은 자기주장에 대한 의지가 진리를 따르려는 의지보다 강하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우리 안에 선천적으로 종교적 기질이 심겨져 있지만, 우리의 불신앙과 망상이 그것을 훼손시켜 버린다."(C.O.37.15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영적으로 거듭나게 해서 자신의 형상을 다시 회복시킨다. 그런 형상의 회복 없이는 우리의 본성 자체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확실한 토대는 우리의 마음이다."라고 말한다.(C.O.23.434.) 이처럼 그는 인간의 자연적 이성에 대해 편견 없이 언급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영혼의 작은 매개체"로 간주한다. "하나님은 무엇이 선한 것인지 분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멸망의 길로 치닫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C.O.27.568.) 우리의 생각과 소망이 비록 잘못된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단순히 짐승이나 한 조각의 나무에 지나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골 3:10 참고) "왜냐하면 가장 사악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양심을 아프게 하는 것과 내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동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C.O.32.730.) 하나님이 모든 선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인간은 이성적 본질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이성 자체가 선을 생산해내는 기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성은 눈이지만 빛이 없는 눈이다. 그런 이성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이성 자체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을 생산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이성개념과 대립된다. "자연적 이성은 결코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수 없다."(C.O.47.6.)



칼빈이 아담의 범죄로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주장할 때, 도대체 무엇이 구체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 그 중에서도 이성의 타락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적(total) 타락이라 해서 이성의 기능 자체가 마비된 것이 아니라 이성 자체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인간의 이성을 '자연적 이성'과 '신앙하는 이성'으로 구분한다. 인간의 자연적 이성은 아담의 범죄로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신앙으로 그 타락한 이성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해야 한다. 자연적 이성이 아니라 신앙하는 이성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으며,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한다.



계속되는 인간의 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지만 그 기능 자체는 인지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선을 향한 의와 자유는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짐승을 능가하는 훌륭한 자질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수치스러움은 의로운 것 앞에서 생겨나는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사실은 우리 안에 종교의 씨앗이 심겨져 있으며, 이는 의로운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태어났다는 인식에서 가능해진다."(Inst.I.15.6.)



우리가 이 땅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칼빈은 인간이 선한 행위의 반복을 통해 도덕적 습관을 자신 안에서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그 어떤 인간의 현실적 도덕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칼빈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언급했던 모든 것은 믿음을 통한 의(이신칭의)와 관계한다. 우리에게 요청된 선은 칭의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현실화될 뿐이다.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하나님 앞에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를 잘못된 시선에 고정시키게 하는 통찰의 매개체는 우리를 바른 길로 안내하지 못하며 바른 목적을 향해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C.O.40.245.)



그러므로 인간은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본성으로부터 죄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온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유전 죄'를 특징짓는 핵심적 내용이다. "우리의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유전 죄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자이다."(C.O.31.51.) 때문에 인간은 본래 무질서하며, 도덕적 삶이 불가능하며, 죄의식에 대해 무감각한 존재이다.



이처럼 인간은 유전 죄로 인해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이다. 멜랑히톤이 고대 철학자들의 자연법을 받아들여 인간의 자연적 도덕성을 인정하는 반면에, 칼빈은 인간에게 선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자질로 우수한 예술작품을 창출해내며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다 할지라도 선의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입김을 불어 넣기 전에는 우리는 황량한 사막에서 유리하는 자들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 외에 다른 무엇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C.O.32.552.)



그러나 그런 사실에서 도덕적 허무주의로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타고난 인간의 죄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의 빛 안에서 인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교만과 선을 행할 수 없다는 무능력을 하나님 앞에서 깨닫고 회개한다면, 절망에서 소망으로, 허무주의에서 낙관주의로 변화된다. 그리스도인이 거듭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자연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연적 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힘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어떤 사랑도 펼칠 수 없는 무능한 힘이다.



"우리 모두에게 오직 자신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를 위한 삶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만을 좇을 뿐이다."(C.O.36.244.) 인간에 대한 가치 판단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해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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