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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노세환장로…“북한선교의 꿈 이룰 것”
땀흘려 가꾼 평안의 집 양로원, 더 큰 비전 위해 내려놓음 결단해
2015-02-13 11:32:20   인쇄하기 [trackback]
한국교회신보
 




 













“먼 길 오셨는데 옷차림이 누추해서 어쩌죠. 눈에 보이니 안할 수 도 없고, 성격상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니 이렇게 매일 작업할 수밖에 없어요.”


의외였다. 처음 중형 양로원(평안의 집)을 운영하는 원장이라고 할 때 인자하고 품격있는 인상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작업복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낡은 운동화를 신은 그는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평범한 인상덕분에 오히려 격식 없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놀라운 이야기와 사연은 무궁무진했다. 자연스레 ‘비결’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헌신된 섬김’이 가능한 이유, 양로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5년 전 온천으로 유명한 이곳 충남 아산 도고면 기곡리에 한 호텔을 인수한 그날부터 그의 손에서 일이 떠날 일이 없었다.


“본래 30여년 가까이 인테리어 및 전기공사를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눈에 보이면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해요. 특히 이곳은 몸이 불편한 분들이 계시니 더 신경을 써야하죠. 남한테 맡기면 대충해서 나중에 일이 더 많아지니 힘들어도 직접해야 안전하고 튼튼합니다.”


이곳 양로원은 처음 형인 노춘장로에게 맡겨 장애인 공동체 사역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던 중 평소 2013년 8월, 양로원을 설립해 본격적인 노인섬김 공동체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리모델링을 위해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지난해 신축건물에 가까울만큼 모든 보수를 말끔히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무언가 부족한가 보다.


“일이 그런가봐요.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니 해도 해도 끝이 없네요. 그저 눈만 뜨면 곳곳에 일해야 할 게 보이니까요.”


사실 넓직한 원장실도 별도로 마련돼있지만 그는 그곳에 편히 앉아본 기억이 없다. 그저 눈만 뜨면 일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른다.


“오신 분들이 그러세요. 이곳이 양로원 맞느냐고 다들 놀라세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계시는 곳인만큼 창문 하나, 못 하나까지도 정성을 다했어요. 그런 정성이 묻어나서 그런지 모두들 오시면 좋아하세요. 저희 부모님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거든요.”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내부에는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양로원인지 고급 펜션에 온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세련된 바닥재부터 천장, 외벽에 걸린 그림하나까지, 마치 고급 갤러리를 연상시켰다.


지하부터 5층 옥상에 이르기까지 건물 곳곳 그의 손길이 닿으면 새롭게 재탄생했다. 특별히 안전을 생각해 건물을 보수한 덕에 비상구는 물론 화재예방을 위한 차단막까지 완벽하게 설치를 마쳤다.


특히 전 층에 방송시설을 설치한 덕분에 대규모 인원을 통솔하기에도 안성맞춤. 여기에 방마다 화장실이 구비돼 있고, cctv 설치까지 완벽을 기했다. 사실 노장로의 아버지도 이곳에 모실만큼 편의시설과 안전에는 자신이 있다고 한다.


“원래 일할 때 당장 앞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그림을 그리면서 작업하는 스타일이에요. 이 건물만해도 그래요. 모든 시스템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리모델링했어요. 그러다보니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 그래도 안전한 공간이 되니 보람은 크죠.”


잠시의 ‘눈가림’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고 일하는 그의 성격상 2억원이 넘는 리모델링도 무리는 아닌 듯 했다.



앞을 내다보고 그림을 그리다



양로원 바로 옆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웅장하게 펼쳐져있다. 국유림이라 훼손될 염려도 없을 뿐더러 수려한 풍광이 사계절내내 그림처럼 펼쳐진다. 또 건물 앞뒤로 탁 트인 덕분에 각 층과 옥상 어디에서도 눈부신 전망을 만끽할 수 있다. 사실 각 층 옥상도 말끔히 보수 공사를 마친 덕분에 넓은 테라스나 카페를 해도 될 만큼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훗날을 생각해 건물을 리모델링했어요. 일부러 옥상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거도 다 그때문이죠. 덕분에 공사기간도 길어지고 일도 커졌지만 지나고보니 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그래야 나중에라도 언제든 다른 용도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평생 ‘정직’하나로 살아온 그에게는 작은 것 하나라도 대충대충하는 법이 없다. 때문에 '일을 만들어서 한다'는 말을 듣지만 그런'뚝심'하나로 오늘날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쪽잠을 자가며 정성을 쏟은 덕분인지 인근에서도 이곳 시설은 손에 꼽히는 시설로 인정받고 있다.



전적인 은혜로 거듭나다



“젊은 적에는 사실 동네에서도 놀기 좋아하는 아이로 통했어요. 그런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었죠. 죽을 사람 살려주셔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남들보다 두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죠.”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삶의 흔적마다 간증이 넘쳐난다. 하나님을 만난 사건도 그로서는 운명적이었다.


“황달로 죽을 고생을 했어요. 그때 누군가 그러더군요. 보혈찬양을 계속 부르라고, 그래서 무작정 불렀죠. 그땐 살기 위해 뭐든 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이 살아계심이 느껴졌어요. 눈물 콧물 다 쏟으며 회개했죠. 그때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내 인생을 책임지시겠다는 확신을 주셨어요.”


한때 무리한 작업으로 그는 큰 중병에 걸렸었다.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아도 별 차도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운명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날부터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이 평안해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의 가장 아픈 과거가 놀라운 미래로 반전 된 순간이다.


"모든 게 다 은혜죠.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이렇게 사용하시니, 감사할 수밖에요. 그러니 한눈 못팔고 오직 주님의 일 해야죠."


은혜받은 후 그는 기도원에서 수년간을 섬기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농사면 농사, 건물이면 건물, 모두가 새롭게 단장되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을 해내니 모두가 그를 인정하고 좋아할 수밖에.


당시 그는 신학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던차에 그를 보살펴주던 기도원 원장은 “목사 말고 장로 되서 평생 주의 일을 하면 어떻겠냐”며 그를 권유했다. 그때부터 결심했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보자고.



은혜를 넘어 기업의 수장으로



그는 그렇게 평생 ‘하나님 바보’가 되었고, 남들의 시선보다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서서히 사역의 문도 열어주셨다.


이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대우중공업을 거쳐 작지만 자신만의 기업을 운영하는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더해지자 승승장구 탄탄대로가 이어졌다.


“사실 모든 경영은 하나님이 하셨어요. 저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없어요.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꼈고. IMF때도 오히려 일이 더 잘될 만큼 평탄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시련도 뒤따랐다. 경쟁업체의 날선 경계와 시기를 피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모함과 질투가 이어졌다. 때론 거짓 증인까지 만들어 경쟁업체에서 그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무릎 꿇고 주님께 나아갔다.


“당시 한 건물에 무려 12개 업체가 있었어요. 그 중 모든 일들이 저희 기업에만 몰려드니 자연히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죠. 그때마다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니 피할 길도 주시더군요.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하나님께 맡기면 완벽하게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구나, 하고 말이죠.”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늘 찾는 자가 적은 ‘좁은 문’을 선택했다. 그래서일까. 시련은 있되,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세무서 신고에서도 드러난다. 자칫 ‘눈속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오롯이 ‘하나님 앞에 진실, 사람 앞에 정직’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졌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십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세무신고를 하는 그를 지켜보며 ‘꽉 막힌’사람이라도 손가락질 했다.


“잠시 사람 눈은 피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잖아요. 어자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내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려면 작은 단위까지 철저하게 해야죠.”


그는 돈에 대해서 초연했다. 이미 수차례 기업 경영을 통해 훈련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엿보면 험한 고비마다 하나님의 발자국이 나란히 있었던 걸 발견하게 된다.



남은 생애, 이제는 북한선교로



"앞으로 계획이요. 그런 거 없어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죠."


때론 마음과 달리 하나님의 계획이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다. 지금이 노장로에게 그렇다. 큰 뜻을 품고 노인사역을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30여 년전 품었던 ‘북한선교’로 그를 몰아붙이셨다.


“사실 양로원 사역도 큰 결단 속에 시작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리모델링을 거쳐 건물을 보수하고 애정을 쏟았지만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시니 순종하며 내려놓을 수 밖에요. 정말 뜻있는 분에게 맡기고 이제는 철저하게 주님의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섬김 사역을 위해 많은 걸 포기했다고 말하면서도 노세환장로에게는 역설적으로 모든 걸 얻은 것 같은 여유로움과 기쁨이 넘쳐보였다.


“정말 애정을 쏟은 곳이에요. 저희 집보다 더 사랑으로 가꾼 곳이죠. 그렇기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일을 위해 사용하시려는 분이 인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도 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곳에서 하나님의 선한 사랑이 계속해서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니까요.”


현재 이 건물은 수양관을 비롯해 노인시설, 요양병원, 청소년 수련관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모든 공사를 완벽히 끝낸 상태다. 무엇보다 물 좋기로 소문난 곳답게 본 건물 1층에 별도의 온천시설이 구비돼 있다. 대규모 인원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 중 하나다. 이미 완벽하게 수리도 끝낸 상태.


노장로는 잠시 사역을 내려놓고 앞으로 세계선교의 밀알이 되고, 나아가 북한선교의 사명을 위해 헌신할 계획이라고 했다.


“계속 베풀며 사는 게 꿈이에요.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떤 길로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무조건 순종하며 따라가야죠. 그것이 제가 사는 이유니까요.”


(문의 011-728-1448/ 041-533-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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